2022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작품 슬픈 삼각형은 외면의 아름다움과 사회적 계급, 자본주의의 위선적 구조를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모델 커플 칼과 야야를 통해 초호화 요트 여행, 그리고 무인도 생존 상황이라는 세 단계를 거치며 권력과 계급, 그리고 인간 본성의 진짜 민낯을 가리지 않고 보여줍니다. 세련된 유머와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집착하는 외형적 가치와 계급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그 속에 인간의 나약함과 적응력을 생각해 보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각 단계는 한 편의 풍자극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계급적 함정과 감정의 기만이 드러납니다.
아름다움의 씁쓸한 가면뒤편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칼이 모델 오디션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칼은 남성 모델이지만 여성 모델들에 비해 받는 보수가 적ㄱ, 외모 외에는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는 외모를 상품화하는 산업의 본질을 반영하는 요소입니다. 이후 칼과 그의 여자친구 야야의 관계는 SNS콘텐츠와 경제적 종속 관계로 얽혀 있음이 드러납니다. 야야는 팔로워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이며, 칼은 그녀와 데이트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들은 사랑이라는 관계마저 콘텐츠로 변질시키는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반영합니다. 아름다움이 권력이 되고, 팔로워수가 존재감을 결정짓는 이 세계에서 진짜 감정은 사라지고, 보이는 감정만 남습니다. 야야는 데이트 중 계산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도, 이후에 SNS에 업로드할 때는 다정한 커플로 포장합니다. 그 안에는 인간관계조차 이미지로 치환되는 디지털 시대의 비극이 고스란히 표현됩니다. 슬픈 삼각형은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덧없는 가치인지를 보여줍니다. 칼은 잘생겼지만 그 외의 능력이 없고, 야야는 아름답지만 생존 능력은 전무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궁극적으로 생존이나 진정한 관계에 있어 무력하다는 진리를 암시합니다. 외적인 매력에 대한 집착은 외적인 매력에 대한 집착은 결국 진정한 관계와 자기 정체성을 갉아먹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이 부분에서 강하게 전달됩니다.
뒤집힌 럭셔리의 민낯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배경은 초호화 요트로 변경됩니다. 이곳은 돈과 권력, 럭셔리의 끝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승객들은 억만장자, 무기상, 앱 개발 부부, 투자자 등 현실 속 톱클래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자랑하며 럭셔리라는 거품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환상임이 곧 밝혀집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이 요트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값비싼 와인과 음식은 구토와 설사로 되돌아오고, 하인이라 불리던 선상 노동자들은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무너집니다. 특히 선장이 선상 만찬 중 고의적으로 마이크를 켜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한 블랙코미디를 넘어선 철학적 풍자극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럭셔리의 민낯을 벗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가치들이 얼마나 허상이며, 위기 상황에서 무기력한 지를 날카롭게 나타냅니다. 가장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가장 비참한 광경이 펼쳐지면서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역설을 표현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것일수록 허약하고, 많은 것을 가졌을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함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선장이 구호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이 배는 이제 모두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권력이라는 것이 제도적 시스템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장면은 자본주의 비판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뛰어난 연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뒤바뀐 계급사회 생존기
요트가 결국 침몰한 후, 소수의 생존자들이 무인도에 도착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인간 본성의 본질은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가장 하위 계급에 속했던 청소부 아비게일이 생존 능력과 주도권을 가진 유일한 인물로 부각됩니다. 생전을 잡고 불을 피울 수 있는 그녀는 순식간에 그곳의 왕이 됩니다. 이 반전은 우리가 평소 갖고 있는 계급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상황 의존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아비게일은 생선을 나누는 권한을 가지고 새로운 리더로 군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가졌던 사회적 지위나 자산을 언급하지만 이 환경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사회 구조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취약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비게일은 음식을 나누며 "나와 잘 지내야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평소였다면 상상도 못 할 대사이지만, 생존이 걸린 환경에서는 그 말이 곧 법이 됩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자 계급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구간입니다. 이 구조 속에서 칼과 야야의 관계도 급변합니다. 야야는 여전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의존하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아비게일은 칼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고, 칼 역시 생존을 위해 야야와 아비게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이 장면들은 마치 현대 사회가 품은 모순과도 같아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짜 가진 것이 무엇인지, 위기 앞에서도 지켜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영화 슬픈 삼각형은 아름다움, 럭셔리, 사회적 계급이라는 층위를 통해 인간의 허영심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제작되었지만 관객에게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허상을 냉철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유럽 예술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통해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